9시 엄마랑 개천가를 걷는다. 좀 피곤했지만 뭐, 밤에 잠이 잘 오기도 하고
아침에 일어나면 배도 들어가 보이고 뭐, 아무튼 엄마랑 저기 보문시장을 넘어
이젠 대광고등학교까지 걷는다.
그리고 턴.
엄마랑 여기 큰 돌에 앉는다.
"선혜야, 여기 정말 멋지지 않니?"
"우와~, 나중에 사진찍어야겠다."
바람이 잦게 불어 찰름거리는 비단물에 건물도 보이고 가로등도 총총이 박혀 있다.
"어? 저기 네온사인도 있네."
물밑나라 글자는 글씨를 거꾸로 쓴 것 같이 생겼다. 웃기다.
자건거를 타는 사람도 보이고, 개도 산다.
저기, 저 큰 개는 물 속에서 무얼 먹고 살지? 송사리? 버들치?
물만 먹고 살까?
그림)물동그라미 그림 세 개
가만히 물을 보고 있는데 뽕뽕뽕, 이게 뭐지? 물도 숨을 쉬나?
"선혜야, 물 속에 물고기들이 있나 봐."
"정말요? 물고기들이 숨쉬러 얼굴 내미나보다."
물고기들이 한 번씩 숨을 쉴 때마다 물밑나라는 한 번씩 (물동그라미 그림을 그리며)
흐려졌다 선명해진다. 그러고보면 이 물밑나라는 작은 물고기 하나도
엄청 중요한 존재인 것 같다.
"엄마, 우리도 여기에 (물동그라미) 숨구멍 만들어 볼까?"
침을 뱉어 본다. 아주 멀리 투!
에잇, 더 멀리, 투!
투,투.
침을 모아 투투. 엄마도 같이 투투.
엄마랑 나랑 뱉은 침으로 고요하고 말끔한 물밑나라를 뒤흔들어본다.
내 침처럼 작은 걸로도 뒤흔들 수 있는 물밑나라는 참 신기루같기도 하고...
금세 물밑나라가 또렷해진다.
"이제 갈까?"
아, 맞다. 조금 후면 엄마랑 보는 드라마가 있지? 어서 가야지.
으라차차차
일어나 걷는다. 훨씬 가볍다.
"선혜야, 저거 오리 아니니?"
"어? 오리다."
물위나라에도 오리 한 마리 물밑나라에도 오리 한 마리,
물위나라에도 가로등 한 개 물밑나라에도 가로등 한 개.
참 신기도 하지.
물밑나라에도 아줌마 두 명 무뤼나라에도 아줌마 두 명,
물밑나라에도 오리 두마리 물위나라에도 어? 오리가 없다.
"엄마, 엄마, 이것 봐봐. 오리가 있는데, 그런데 오리가 없어."
"어디? 설마, 잘 봐봐."
엄마도 나도 가만히 섰다.
엄마는 땅거, 나는 물거.
"오리 두 마리.""오리 없는데."
"아저씨" "아이 두 명"
"갈비집" "만두집"
"엄마...." "선혜야...."
우린 서로 보며 웃었다.
"그러니까, 물밎나라가 따로 있는 거네."
"와, 엄마 우리 들어가볼까?"
"에이, 저기도 밤인데, 실례지."
"그런가? 낮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데..."
"그럼 그냥 침뱉기해요. 저쪽 세상에 노크하고 싶어요."
투,투,투----.
투투, 투투투-.
엄마랑 나는 물밑나라에 침을 뱉는다.
침이 물에 닿자마자
물동그라미 그림 세 개
물동그라미가 만들어지고 잠시 흐려진다. 그리고 자세히 보니, 무슨 강아지 같은 게 나와
두리번거린다.
"우리가 침 뱉었다!"
"투 투 투 투 - "
다시 물동그라미가 만들어지고, 또 흐려진다. 그리고 정말 반짝반짝한 건물들이 가득한
조용한 물밑나라가 보인다. 그새 더 밤이 되었다.
"엄마, 가요."
"그래, 그래."
엄마랑 나는 이곳에 표시를 해두었다. 어떻게?
음, 그러니까 다리에서 다섯발자국 들어오면 큰 돌 앞에 앉으면 보이는 물.
히히, 다음에 올 땐 집에서부터 침을 안 삼키고 모아와 엄청 큰 노크를 해봐야지.
나의 대왕침을 받아라~!
그리고, 하도 날이 칙칙히서 낮에도 물밑나라가 보이는 때가 딱 걸리는 날,
한번 구경가봐야지.
그 아래서 땅 위로 침도 뱉어보고.
받아라, 투!
2011.3.16. 선혜
유쾌해요! 보는 내내 내 입술에 웃음이 걸렸어요. 침! 퉤가 아니라, 투! 정말 재밌어요. 나도 서른즈음엔 아직 이런 느낌이 남아있었는데... 잃어버린 뭔가를 보는것 같아서 아련하군요.